09/09/2026
대신파이낸셜그룹-서울대학교 헤리티지 라운지, 2026
설계담당: 도우람, 한명제, 김민정
시공: (주)시공문화
가구: STANDARD.a
사진: TEXTURE ON TEXTURE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1975년에 건립된 본관과 2015년에 증축된 관정관으로 이루어진다. 헤리티지 라운지는 두 건물이 직접 만나는 관정관 2층에 자리한다. 기존의 ‘스터디가든’은 학생들의 학습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넓은 면적에 비해 낮은 천장과 제한적인 자연광, 프로그램의 혼재로 인해 이동하는 곳과 머무르는 곳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리모델링은 이 공간을 여러 개의 실로 분할하는 대신, 하나의 내부 도시처럼 다시 조직하는 데서 출발했다. 개인의 집중뿐 아니라 대화와 공동학습, 휴식과 우연한 만남까지 학습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social learning’의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넓은 바닥 위에 성격이 다른 장소를 만들고, 그 사이를 길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전체 공간은 포커스 영역, 관악라운지, 휴게 영역으로 구성되며, 이를 ‘진리의 길’과 ‘빛의 길’이 관통한다. 두 이름은 서울대학교의 표어인 ‘Veritas Lux Mea’에서 가져왔다. 진리의 길은 기존 본관의 입면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회랑이다. 본관 외벽을 새로운 마감으로 덮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그 앞에 반복되는 수직 요소와 화강석 바닥, 휘장과 조명을 배치하였다.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본관과 관정관의 건축적 질서 사이에 또 하나의 질서를 삽입하여 두 건축의 시간차를 드러낸다.
진리의 길과 직교하는 빛의 길은 관정관의 깊은 평면을 가로질러 본관으로 이어진다. 바닥과 천장의 방향성, 선형 조명과 루버가 이동의 축을 만들며, 그 끝에는 관악산을 재해석한 이창원의 작품 〈관악다경〉이 놓인다. 두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오래된 본관과 새로운 관정관, 대학의 역사와 현재의 일상을 연결하는 공간적 장치로 작동한다.
공간의 중심에는 개교 80주년을 기념하는 ‘관악의 테이블’을 놓았다. 최대 80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긴 원목 테이블은 개별 책상의 집합이 아니라 공동 학습을 위한 하나의 큰 수평면이다. 학생들은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공부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개인의 활동과 공동체의 활동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주변부로 갈수록 공간의 밀도는 높아진다. 기존 열람석보다 넓어진 개인 학습면을 기반으로 1인·2인 포커스석과 그룹스터디 공간을 배치하고, 반대편에는 소파와 네스트형 좌석이 놓인 휴게 영역을 계획했다. 중앙의 열린 테이블에서 작은 그룹 공간, 개인 집중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시각적 관계와 점유 영역이 단계적으로 변화한다. 벽으로 프로그램을 나누기보다 가구의 크기와 높이, 조명과 재료의 차이로 집중의 정도를 조절한다.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기존 건물의 조건도 적극적으로 설계에 반영했다. 공사 중 철거 과정에서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예상보다 많은 빛이 유입되는 것이 확인되자, 계단을 감추는 대신 독립된 구축물로 드러내고 주변을 비워 수직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완성된 설계를 기존 건물에 일방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공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조건을 다시 읽고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헤리티지 라운지에서 ‘헤리티지’는 과거를 전시하거나 재현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1975년 본관의 입면과 2015년 관정관의 구조, 그 사이를 걷는 길과 현재 학생들의 일상이 함께 하나의 환경을 만든다. 건축은 서로 다른 시대를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기보다,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 이동과 체류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을 조직한다. 이곳에서 헤리티지는 보존된 대상이 아니라 매일 사용되며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공간적 경험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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